봄날이 한창인 4월 중순 한 통의 전화와 함께 건축주가 찾아왔다. 몇 번 사무실을 방문할려고 나섰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그리고 간판 하나 없이 주변에 묻혀 있다보니 방문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설계를 의뢰하고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수첩을 마련하여 집에 대한 여러 가지를 기록하며 여러 매체를 통해 정보를 획득한 건축주의 열정은 남달랐다. 많은 준비를 한 탓일까. 정작 건축가를 만나야 할 시간이 조금 지나버렸다. 시간이 촉박했고, 마음이 다급해 졌다. 설계에 필요한 시간이 그다지 많질 않았다. 이미 정해놓은 이사 날짜를 맞추어야 했으므로 공사기간을 감안한다면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었다. 작은 집이지만, 구조형식이 목구조에서 콘크리트로 그리고 다시 목구조로 3차례나 바뀌었고, 그로인해 설계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매 과정에서 결정이 더딘듯 했다. 하지만 대안을 마련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나면 신중한 결정이 뒤따라 오히려 건축가의 부담은 줄었다.
설계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즈음, 건축주에게 이 집의 이름을 지어 보시는게 어떻겠느냐고 여쭈었다. 고민을 하시는 듯 어려워 하시더니, 다음날 재치있는 문자가 왔다.
건축주께서 보내오신 이름은 낙락헌(樂樂軒)이었다. 그리고 그 설명을 첨부해 주셨다. 왜 즐거울 ‘낙(樂)’을 저렇게 반복해서 적었을까. 집에서 가족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평소에 해주셨던 것은 알겠지만 왜 두 번이나 거듭 적어 강조를 하신 걸까.
첫 자의 낙(樂)은 이미 그 뜻을 알 것이다. 두 번째 위치한 락(樂)은 음만 빌어 사용하였다. 태국말의 '사랑'에 해당하는 음이 ‘락’에 가까운 발음이라고 한다.
건축주의 부인은 태국분이시다. 여느 집과 다르지 않고 평범하고 소박한 소망으로 지어진 이름이지만 동음을 반복하고 그리고 아내의 나랏말 음을 차용하여 집의 이름에 사용했다는 것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이름의 뜻을 알고 나니 따뜻해졌다. 몇날 몇일동안 화선지에 먹으로 '즐겁고 사랑스런 집' 8자를 수백번 적었다. 이 집 이름의 깊은 속내를 8자에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착공 후에도 몇 가지 변경 사항이 발생했다. 설계기간 동안 다 못한 고민이었나 싶어 아쉬운 마음도 자책도 교차했다. 건축주는 평생 모은 자금으로 인생에 단 한번 집을 짓는다. 운이 좋아야 한번이다. 한 두푼도 아니고 다시 지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어느 한 부분 신경 쓰이지 않는 부분이 없으며 그렇다고 확신을 가지기도 어렵다. 건축가들도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고 해결해 주어야 할 부분이다. 건축가의 역할이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교감이 그래서 중요하다. 자주 만나야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비단 짓고 싶은 집의 얘기 뿐만 아니라 소소한 생활의 얘기도 집에 반영이 된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한창이던 겨울 이 집은 완공되었다. 외부마감은 밝은 스타코에서 어두운 벽돌로 바뀌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낮은 울타리가 만들어 졌다. 처음에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뜻한 대로 마무리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집이 나빠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골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이 집이 놓여져 바라보는 대로 이곳은 지금부터 아주 여러 해 동안 건축주와 그의 가족이 행복하게 삶을 영위할 집이다.
위치_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 대지규모_430 ㎡ | 건축규모_지상 2층 | 건축면적_84.09 ㎡ | 연면적_132.19 ㎡
건폐율_19.56 % | 용적율_30.74 % | 최대높이_7.85 M | 공법_경골목구조 | 지붕마감_칼라강판 | 외벽마감_치장벽돌
바닥재_강마루 | 창호재_PVC 시스템창호 | 시공_뉴타임하우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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