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기에도 초라한 집이다. 두 번의 설계와 석 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에 영동 금정리 작은 마을에 남겨진 초려삼간草廬三間 이다. 이전 이 땅을 차지하고 있던 집은 1949년과 1955년, 1959년에(건축물대장 상으로) 각각 세워지고 증축을 거쳐 얼마 전까지 오롯이 제 역할을 해왔다. 60년, 한 가족, 짧게는 두 세대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집 이었다.
그래서 당초 설계는 많은 것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 어떤 건축가도 그렇게 잘 다듬어진 흔적을 지워내고 새로운 공간으로 돌아와 온전히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것도 도시 생활을 내려놓고 돌아온 고향에서 그리고 유일하게 당신께서 남겨놓으신, 당신과 공유했던 시간이 존재하는 그런 장치를 남겨 놓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남겨 놓는다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래전 정확한 경계에 대한 개념보다 이웃 좋아 구두로 이만큼 저만큼 하여 지어졌던 살림집이었고, 세월은 흘러 각박한 현실의 타산으로 따져보니 경계를 심하게 넘나들고(너무나도 분명하게) 있었다. 뒷집으로 드나들기 위해 내어준 길도 떠안아야하고 넘어선 부분도 적법한 조치가 필요했다. 복잡한 일이었다. 행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이제는 한 세대를 넘어선 상호 이해관계의 문제 해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해결되어도 도로로 넘어선 부분은 철거를 해야 했고, 부분 철거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울한 시작이었다. 건축이라는 행정적 행위를 위해서는 어쨌든 전면 철거가 수순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로서는 집을 짓는 가장 중요한 이유마저도 함께 사라진 셈이다.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기까지는 정말 단순한 과정이었고 짧은 토막의 시간이었다. 거대한 중장비로 반나절에 모든 게 사라지고 텅 빈 장소로 바뀌었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이 땅위에 저렇게 비워진 이전의 기억이 없었으므로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래된 하드웨어를 치운 것이 기억 속 소프트웨어마저 포맷해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이 집은 남루하진 않으나 초라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로 인하여 분명해진 것은 지금 비워져 있는 이곳에서 과거의 그 집과 지금의 이 집이 어떻게 얽혀 가는가가 가장 중요해졌다. 두 집을 연장선상 올려놓을 수 있는 장치여도 좋고 작은 소품이어도 좋다. ‘기억의 이식’에 필요한 전이체, 그 매개물질에 의한 공감이 필요했다.
이 집은 특이한 집은 아니다. 기존 집의 배치를 따랐고, 단층의 작은 살림집이기에 많은 공간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단촐하고 평범하다. 늘 그러하듯이 기능과 활용적인 면에 충실하도록 계획을 꾸려갔다. 가장 보편적인 구성이다. 하지만 작은 공간으로 분절되어 가뜩이나 작은 집의 공간이 더 작아 보일 것을 감안해 두 공간을 연속되게 하여 공간감이 부족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식될 기억에 사용될 매개체를 철거 부산물에서 얻었다.
한 때 곳간에 나락을 채우고 한 장 한 장 아래에서부터 닫아왔던 판문들이 고재로 남아 있었다. 철거 부산물 중 온전한 상태로는 유일무이했다. 나무를 다루는 지인에게 우선 보여주고, 이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심사 끝에 조명을 제작 했다. 우리들 부모님 당신들께서 바라던 것은 소박한 한 끼였다. 지금은 넉넉한 삶에 배곯아 지내진 않지만 당신께서 우리에게 묻는 첫 물음은 아마 끼니의 물음일 것이다.
곳간의 목재 판문은 식탁을 비추는 조명으로 재활용되었다. 언제나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낮게 걸었다. 저 조명은 이 집의 모두가 되었다.
건축주의 심드렁한 눈빛은 두렵다. 무엇인가 아직 부족하거나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남았다는 눈치다. 살림집은 어떤 건물보다 사용할 사람과 친밀도가 높다. 하지만 건축가들은 새로 지은 그들의 살림집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사용설명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미 그간의 대화 속에서 건축주의 거주 패턴을 파악하고 가능한 실현해야 한다. 건축가와 건축주의 신의는 이 때문에 중요하다. 탐탁지 않은 눈빛은 신의 관계가 완벽하지 않은 탓이다. 그 문제가 어느 누구에게 있든지.
그 눈빛은 지워질 수 없는 기억이었다. 처음에는 온전히 남겨놓고 싶었고, 다음에는 일부라도 살려놓고 싶었던 과거가 일순간 사라진데 대한 서운함 이란 걸 알고 있다. 마무리 즈음에 조명을 달았고, 그리고 그간의 과정을 말씀 드렸다. 집 일부의 조그마한 소품이 갖는 의미가 건축가인 나에게 인식되는 것과 받아들일 사람들에게는 뉘앙스가 약간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큰 차이는 아니었다.
이 집이 자리한 곳은 작은 마을이다. 몇 가구 남지 않는 길의 끝에 있다 보니 지어 지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한마디씩 내던졌다. 그 보태어진 말들만 주워 담아도 남의 집 수 채는 지었을 것이다. 일일이 대응을 꺼리던 건축주도 이제는 이전 집의 그 곳간 판문을 기억하는 분들이니 조명에 대해서 그리고 이 집에 대해서 세세하게 설명을 늘어놓으신다. 참 밝은 집이고, 앉아있자니 일어서 나서기 싫어진다.
잘 건조되고 결이 좋은 느티나무를 골라 이름을 새기고 걸어드렸다. | 서각 : 박민철
건축개요
위치_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 | 대지규모_436 ㎡ | 건축규모_지상 1층 | 건축면적_141.61 ㎡연면적_141.61㎡
건폐율_32.48 % | 용적율_32.48 % | 높이_4.95 M | 공법_경골목구조 | 시 공_나무이야기 | 사진_석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