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영화의 조연이 누군가에 의해 영화를 결정하기도 한다.
극의 전개, 흐름에서는 조금은 벗어나 있지만 그들의 연기는 극의 집중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끝없는 위트와 혼신의 연기는 주연 이상의 감동을 안겨준다. 주연은 주연 나름의 연기폭이 있을 수 있고, 조연은 조연 나름의 주연과 다른 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어야 영화는 만들어질 수 있다.
천만배우, 천만요정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물론 그 천만이라는 숫자가 비단 그들만을 빗대어 얘기하는 것은 아닐지언정 그만큼의 이유는 분명 존재하고 '신스틸러'가 된다. 하지만 신스틸러가 주연의 빛을 가리진 않는다. 극의 전반을 통틀어 휘젖지 않고 다른 단역과 조연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supporting actor로서 기꺼이 남는다.
다른 예술분야도 비슷하다. 단역, 조연도 배우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스타로 스무 발자국(twenty feet from stardom)' 물러나 있지만, 그들도 가수다.
건축도 유사하다.
건축계에도 스타 건축가가 있고, 그들의 뒤에서 조금은 주목을 적게 받지만 훌륭한 건축가들이 있다. 신스틸러처럼 빛을 발하기도 한다. 스물 발자국 떨어져 있는 그들의 노래 실력이 모자라서도, 그리고 주목을 적게 받는 건축가들이 설계, 디자인 능력이 부족해서 항상 그들의 등을 쳐다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역할의 문제다. 모두가 배우고 가수이고 건축가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주변에서 주연만 가득한 주택단지를 보게 된다.
마스터플랜을 계획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도 한정 짓고, 여러 조건을 내붙여 단지를 통일감에 구성하고 개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 발생했다. 그 땅에 내붙여 놓은 제약들이 그 단지를 일관되게 가꾸어 주고 틈틈히 생겨나는 변화가 특징이 될 줄 았었는데, 건축가들의 개성이 그 모든 것을 수포로 만들었다. 모두가 독특하고 모두가 미남 미녀들로 채워져 오히려 개성이 단지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꼴이 되었다.

내 어릴적 이면 도로의 집들은 B급으로 가득한 정감있는 곳이었다

누구나 전에 없는 독특한 건축가의 개성이 도드라진 건축을 하고 싶어 한다. 창조적 작업이라는 굴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만들고 싶다. 하지만 그 중 누구도 완공된 자신이 설계한 건물이 또 다른 건물에게는 배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염두하지 않았다. 조연은 없었다.
조연도 배우다. 보편적인 감성으로 지어진 집도 조연 배우처럼 건축가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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