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할머니 집은 참 건강한 집이다.
오늘 건축물대장을 살펴보니 1972년에 사용승인 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아마도 그것보다 훨씬 오래된 집이 아닐까 싶다. 옛 목조와 기와로 이은 집 위에 나이가 들어 낡은 벽과 지붕에 벽돌을 쌓고 금속 지붕을 올려 아직도 무탈하게 쓰고 있다. 명절이면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가족들이 모여 좁은 대청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은 여느 대가족 못지않게 정겹다. 그리고 찾는 이 모두가 건강한 기운을 선물 받아 돌아간다. 지금의 본채는 서향을 바라보고 있다. 서향이면 오후 늦게 더는 볕이 싫어질만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아래로 넓은 들을 바라보며 앉아있으니, 그 마저도 싫은 기색이 없다. 그 너른 들판은 바람을 가르지도 막지도 않아 언제나 상쾌한 공기가 이 집 주위를 맴돌아 가니, 그 기운이 건강할 수 밖에 없다.
마당은 좁지만 담아래 잘 지어놓은 화단에는 없는게 없을 만큼 가득하다. 한켠 동백나무는 매해 신선한 기름을 제공하고, 다른 한켠 감나무는 높지 않아 잘 익은 감을 아이들도 거들어 딸 수 있고, 담장밖 뽕나무는 그 잎이 수없이 많아 아래 수돗가에 그늘을 만든다. 비록 서향이지만 조그만 집들이 여러 채 놓여있다보니 그늘져 음습한 곳이 없다. 남향이면 더 좋았겠지만, 주어진 조건이 그렇지 못한데 고집할 수는 없으니 서향으로 배치하면서도 지혜로움이 집안에 가득하게 하여 이 집은 어느 집보다도 건강한 집이 되었다. 이 거제도 집의 입구쪽 오래된 은행나무는 올 해도 엄청난 은행을 도로위에 쏟아놓고 그 풍만한 향을 내뿜어 가을을 전하고 있었다. 일년에 두어번 찾아뵙는게 다 이지만, 서울을 떠나 찾아뵈는 긴 여정이 힘들지만 그 만큼이나 정겨운 시간이 보장되는 집. 그리고 사는 이도 찾아오는 이도 건강한 집, 그런 집이 거제도 할머니 집이다.